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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정비사의 목표

Jason Park 2019. 4. 25. 11:25



항공기 정비사가 되고 싶다며 찾아오는 청년들에게 항공사 합격을 목표로 하지 말고 그 이후를 준비하라고 많이 강조합니다. 합격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에 힘들어 하는지 알아보고 미리 대비하며 훈련하라는 의미였습니다. 마치, 대학 합격만 준비하던 고등학생들이 합격 이후에 방황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취업 이후에도 벌어지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취업한 정비사들도 환경에 노예가 되어가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 상황을 바라보며, 또 다른 목표를 제시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보다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를 고민하다가 메뉴얼을 기준으로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항공기 정비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는 메뉴얼에 의해 행동해야하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지키지 않는 것 뿐, 사소한 청소용 세제를 사용하는 방법에도 정해진 메뉴얼을 따르는 것이 맞습니다. 메뉴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직업 중에서도 궁극의 직업이라 할 수 있는 항공기 정비사들 상당수가 메뉴얼을 보지 않거나 볼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믿고싶지 않은 현실이지만, 우리 사회 대부분의 직업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겠습니다. 정비할 줄 모르는 정비사 또는 조종할 줄 모르는 조종사라는 표현이 그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사나 변호사라는 직업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여기서 표현하는 "정비" 와 "조종"의 기준은 해당 직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이 바라보는 기준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로, 종사자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을 갖춘 사람들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말씀드립니다.


저도 현역 정비사 시절에 많이 보았던 상황이고, 그러한 상황에도 비행기가 큰 사고없이 운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까지 했었습니다만, 어쩌면 그러한 불완전한 인간들이 운용하는 항공기도 무리없이 비행할 수 있는 것이 "메뉴얼" 때문이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메뉴얼이 중요하고, 잘 따르기 위해 훈련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능력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항공기 정비사는 메뉴얼을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고, 그 내용을 암기해서 적용하지 않도록 평소에 꾸준히 읽고 훈련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메뉴얼을 기준으로 항공정비사를 분류하면, 그 일의 난도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겠습니다.


먼저, "메뉴얼 없이도 할 수 있는 정비를 하는 정비사"가 있습니다. 물론, 아무리 간단한 작업이라도 메뉴얼을 확인하고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서비스 작업들은 메뉴얼을 확인하지 않고 수행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자동차의 타이어 교환이나 공기압 조절, 각종 오일, 필터, 전구 교환과 같은 단순한 작업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자동차 수리하시면서 메뉴얼 확인하는 정비사를 보신 분이 얼마나 되실까 궁금하네요. 항공기의 경우 이러한 일을 배우는데 1년 정도 걸린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다음 단계는 "메뉴얼이 꼭 필요한 정비를 하는 정비사"가 있습니다. 조금 더 난도가 높은 작업으로, 메뉴얼을 철저하게 분석해서 원인을 찾고 해결하는 행위를 할 수 있는 정비사를 말합니다. 숙련된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하고 어려운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대우도 잘 받을 수 있습니다. 작업의 시간도 꽤 오래 걸리기 때문에 정비사의 능력에 따라 항공기 운용능력이 달라질 수 있고, 항공사 입장에서는 이런 능력을 가진 정비사들을  많이 확보해야 합니다. 평균 10년 정도는 노력해야 가질 수 있는 능력이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마지막 단계는 "메뉴얼에도 없는 결함을 해결할 수 있는 정비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학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질병이 있듯, 아무리 사람이 만들어낸 기계라고 할지라도 메뉴얼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결함이 생기게 됩니다. 과거에 비해 그 비율은 많이 줄었지만, 기술의 발달과 자동화, 모듈화라는 변화 속에 오히려 정비사들의 능력이 감소하는 추세에서 항공사의 유지비용은 늘어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원인 분석보다 관련 부품을 모두 교환하는 극단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도 크게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지요.


그러한 측면에서, 메뉴얼이 해결하지 못하는 결함을 찾을 수 있는 극소수의 정비사가 가지는 가치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조직에서의 대우는 물론이고 스스로 느끼는 자부심을 넘어 삶에서 느껴지는 행복감이 극치에 이른다고 저는 표현하고 싶습니다.


직업적 성공이란 이런 단계까지 오른 경우가 아닐까요? 물론 정비만 잘한다고 이런 수준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만한 인품이 마련되어야하고, 이런 분들이라면 항공기 메뉴얼을 넘어 인간관계 메뉴얼에도 통달하신 분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SBS 스페셜 화면 캡쳐]


단기 직업적 목표를 이렇게 나눌 수 있다면, 더 길게 장기적인 삶의 목표로 삼을 수 있는 좋은 예시를 들어드리겠습니다. 마침 지난 주말에 방영했던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68세 노인이지만 청년처럼 늘 배우며 스스로 쓸모를 찾아가는 분입니다. 항공기 정비사로 살아가며 그 마지막 목표라고 해도 좋을만큼 행복하게 사시는 분이고, 저도 비슷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상을 보는 내내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고, 주인공의 사소한 행동들의 의미과 기원까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많이 알수록 행복해집니다. 그래서 공부하시라는 뜻이고, 이런 주제로 여러 이야기를 해주는 과정에서 일부를 영상으로 편집해 공유합니다.






철저한 메뉴얼을 통해 만들어지는 스타벅스의 커피 맛이 지점마다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은 선천적인 미각이나 후각 때문이 아닌, 경험을 통한 지식에 기반합니다. 이는 아는 것이 얼마나 즐거움을 만들어 내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Jason Park


공군 부사관, 국내외 항공사와 개발업체, 대학 등 에서의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항공 및 기계분야 종사자들의 공동체를 이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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