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들이라는 것이 원래는 새집을 지어 처음 들어갈 때 지내는 제례 성격의 행사였지만, 점차 이사를 하거나 새집을 장만하는 사람들이 주변의 지인들을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하는 행사로 변화되더군요. 제가 어린 시절에는 집들이에 양초나 성냥을 선물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전기가 풍족하지 못했던 시절이라 필수품인 이유도 있었지만 화재가 나지 말라는 의미와 행운이 불처럼 타오르라는 의미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선물이 시대적 상황이 변화하며 세제나 화장지로 달라지고 최근에는 규정된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주고받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최근, 주변의 청년 중에 처음 살아보는 곳으로 이사를 하면서 첫 독립을 하는 기회를 가진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결혼한 커플들이 집으로 초대해서 집들이를 한 경우는 자주 있었지만, 미혼 여성이 자신의 방으로 초대를 하는 경우는 처음이라 여러모로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물론 저도 청년시절에 다양한 형태의 자취를 해보았고, 주변의 친구들이 거주하는 공간에 대한 경험이 많이 있었지만, 다시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요즘 청년들의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이해의 기회가 되겠다 싶어 많이 기대도 되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집들이라기보다는 방들이라 부르는 것이 맞겠지요. 워낙 작은 공간이라 많은 구성원들이 참여하기는 어려웠고, 외부에서 식사를 한 후 간단히 다과만 즐기는 것으로 예정했습니다. 주말이고, 직선거리로 그리 멀지 않은 지역이지만 버스를 두 번 이용해야 하는 지역이라 갈아타지 않고 두 번째 노선구역은 걸어서 가기로 했습니다. 2km 정도의 거리를 걸으며 지역의 분위기도 살피고, 어린 시절 약간의 인연이 있던 추억도 돌이켜 보았습니다.
같은 서울인데, 이곳은 마치 30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듯 오래된 가게들이나 거리의 모습이 반갑기도 했습니다. 이런 곳에 거주하게 될 청년에게 어떤 이야기가 도움 될 수 있을지 생각을 정리하며 약속장소인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예약시간보다 1시간 일찍 도착한 이유로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낼까 싶었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더군요. 그래서 무작정 식당으로 들어가 너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마침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멤버들부터 서둘러 도착했고, 맛있는 점심을 함께하며 지역과 이사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점심은 청국장이었는데, 지역의 맛집이라고 수문이 났다며 많은 고심 끝에 내렸다는 결론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맛은 좋았습니다. 여유 있게 식사를 마치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마침, 매월 진행하는 독서토론이 예정되어 있던 날이라 오랜만에 카페에서 진행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번에 토론할 8월의 책은 "인간이 만든 / 물질 물질이 만든 인간" 이라는 제목의 과학서적입니다. 주변의 다양한 발명품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고, 그 물건(물질)이 다시 인간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를 재미있게 서술한 책입니다. 자칫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는 물건들에 의해 생활이나 습관이 달라지고, 그로 인해 우리가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신다면 한 번은 생각해 보고 사용여부 또는 정도를 적절하게 조절해야겠다는 결론을 만들어주는 책입니다.
읽고 오지 않은 참가자들이 꽤 있어서, 책보다 영화와 최근 유행하는 드라마에 관련된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었지만 그 역시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양한 주제로 나누는 대화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샘물이 되기도 하니까요...
짧지 않은 대화를 마치고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이 살고 있는 집으로 갔습니다. 작고 아담한 방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근래에 취미로 시작한 식물 키우기에 많은 즐거움을 느끼며 살고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간단히 다과를 나누며 수다 좀 떨다가 본격적인 직업병이 발동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저것 위험한 것이나 불편해 보이는 것들을 파악하고 수정하기 위해서 곳곳을 살펴보았습니다.
현관의 센서등에 잔광현상이 있어 야간에 불편했다는 소식을 미리 듣고 준비했던 공구와 부품이 있어서 먼저 작업에 들어갔고, 현직 항공정비사에게 의뢰했습니다. 약간의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깔끔하게 교체와 교정을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고 뿌듯했습니다. 작업하는 모습만 보면 지금까지 어떤 자세로 경험하고 배웠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취생활의 즐거움과 함께 불편함을 수정하는 재미를 누리며 살아가는 청년들의 모습이 더없이 보기가 좋았습니다. 추가로 알아야 할 몇 가지 생활의 팁을 전해주고 자리를 마쳤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같은 거리를 되돌아 걸어오는 저를 배웅하는 오늘 행사 주인공의 마음이 더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노모의 병환으로 지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와중에 큰 위안이 되어준다 말해주며, 지금의 가족 이상의 가족을 꼭 만들며 살아가 달라는 부탁으로 오늘 만남을 정리했습니다.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청년들 덕분에 많은 힘이 됩니다. 여러분 주변에도 그런 분들이 많으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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