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전문가의 소멸

 

 

다양한 기계분야에 종사하는 청년들이 늘어가면서 기계의 유지, 관리를 넘어 개인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이야기로 지도하는 과정에서 강조하는 부분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모임 구성원 중 연인관계에 있는 두 청년이 동종업계의 경쟁사에 나란히 입사하게 되는 신기한 경험도 하게 되었는데, 함께 일을 배워가며 조직의 특징이나 국적이 다른 동종의 기계를 비교해 보며 서로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여러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경험들이 직무적 성장에 그치지 않고 개인의 삶에 작용하여 각자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인생을 관리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기계가 존재하지만, 과거의 정의와 최근의 기계에 대한 이미지는 많이 달라진 것으로 느껴집니다. 저는 비행기라는 기계로 시작해서 다양한 기계로 경험을 확장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건축물을 넘어 인체도 기계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기계를 공부하며 "정비" 의 기본을 배우고, 같은 원리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분야에 적용해 보니 대부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자주 언급하지만, 제가 정의하는 정비는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는 모든 제반 행위" 입니다. 사전적 정의로도 "흐트러진 체제나 조직 따위를 질서 있게 바로잡음" 으로 표현하고 있으니, 굳이 기계에 국한하여 쓰지 않아도 다양하게 활용이 가능한 단어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과거의 기계는 육중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중공업 제품을 연상시키는 물건이었습니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시대의 변화에 맞물려 기계가 전자제품화 되어가고 있고, 그에 따라 시스템도 복잡해지며 다양한 기능이 추가되기는 하지만 자동화 기조에 따라 오히려 사용하기는 더 쉽게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일반인들의 기계에 대한 이미지는 전자제품에 가까운 물건으로 인식되기 시작하고, 이 변화의 한 축으로 기계에 대한 판단 기준도 더 이상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전기자동차와 스마트폰이고, 사람들의 기계에 대한 관심이 변화하며 내구성이나 기계적 성능보다는 소프트웨어를 통한 편리성에 더욱 집착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기계 자체에 대한 관심이나 정보 또는 지식이 부족한 입장에서 현란한 광고와 마케팅, 소프트웨어의 편리성에 집착하게 되는 소비자의 심리를 기업은 오히려 더욱 심화시켜가며 이용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자동차를 예로 들어도 최근의 전기차를 선택하는 기준을 보면, 기계적 성능이나 내구성보다는 이미지나 자율주행과 같은 소프트웨어에 집중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기계를 구매하는 소비자의 인식 변화는 곧 생산자의 기준을 바꾸게 되고, 우리 주변의 기계들을 변화시키게 됩니다. 이런 영향으로 만들어낸 가장 큰 기계의 변화는 "모듈화" 입니다. 일정 기능을 담당하는 부품들을 모아 반도체 또는 하나의 전자제품으로 만들어 구조를 단순화하는 작업을 말하는데, 기술 유출에 대한 안정성이 비교적 높고 정비행위가 쉬워지는 장점이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수리비용이 과도하게 높아지고 정비사 입장에서는 기술력이 떨어져 직업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단점보다 장점이 많으니 채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변화이며, 최근에는 모든 기계가 이런 형태로 만들어진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면, 95년에 만들어진 제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램프 하나 교체하는데 2만 원이면 됩니다만, 최근에 만들어진 동일 차종의 헤드라이트는 전체가 하나의 LED 모듈이기 때문에 하나의 헤드라이트 모듈 교체에 200만 원이 넘게 들어갑니다. 

 

물론 아직도 산업현장에는 중공업 제품으로의 기계는 존재하지만, 역시 많은 부분 전자화 되고 있는 현상은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어 사용자나 유지, 관리하는 입장에서 이전보다 더 많은 비용이 투입되어야 하는 것이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기계를 다루고 정비하는 직업을 가진 입장에서 이러한 변화는 개개인의 직업적 경쟁력을 잃게 만들고 있습니다. 항공기의 경우 이미 정비사의 실력에 의존하는 정비행위를 위험인자로 분류하고, 개발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손이 가능한 한 적게 닿을 수 있도록 설계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기계는 물론, 산업 현장에서 직업으로 다가오는 기계들 역시 같은 변화의 수순을 밟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저가의 장비들의 경우 아직은 모듈화 되기 전 아날로그 장비가 많이 남아있는 추세입니다.

 

기계가 점차 디지털화 되면 작업이 편해지니 좋겠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직업적 난도가 낮아지면 그만큼 존재감도 낮아지고 처우도 함께 추락하게 된다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요? 이미 항공기 정비사의 직업적 변화가 그렇게 나타나고 있고, MRO 업체의 증가와 FSC 소속의 정비사들이 줄어가는 현상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건설업으로 비유하면 원청업체 소속의 직원은 줄어가고 하청업체 소속의 인원만 늘어가는 형국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계를 다루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합니다. 일정 금액 이하의 장비에서는 의미가 없어도 고가의 장비를 정비하고 유지하는 능력에는 매뉴얼에서 다루기 어려운 결함을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단순한 부품 교체로 해결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결함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예를 활용하여 설명해 보겠습니다. 최근에 어머니 댁의 LED 조명을 교체할 일이 있었습니다. Power Supply 만 교체하면 될 일이었지만, 온라인으로 알아보고 주문하는 시간과 교체하는 과정까지 2~3일은 소요될 수 있어 그간의 불편을 줄여드리고자 Assembly 로 교체했습니다. 결함이 있던 LED Set 는 집으로 가져와 수리를 하기로 했고, 이전에 작업과정에서 남아있던 중고 Power Supply 를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아래의 링크 참고)

 

 

LED 조명 컨버터 교환기

 

 

LED 조명의 구조는 Light Module 과 Power Module 로 간단히 구성됩니다. 예전의 형광등보다 간단해서 쉽게 작업은 가능한데, 문제는 제 규격에 맞는 제품을 찾기가 어렵고, 찾는다고 하더라도 교체과정에 필요한 지식이 있다는 것이 문제겠습니다. 이전에 사용하던 Power Module 은 다행스럽게도 전원 규격이 비슷해서 사용이 가능했지만, LED Module 과 연결하는 Connector (연결구)에 차이가 있는 상황입니다.

 

일반적인 경우, 자신이 필요한 Power Module 의 규격도 모르는 경우가 많고, 찾았다고 하더라도 Connector 의 차이로 인해 정확하게 필요한 제품을 구매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전체 Power Module 의 규격화가 되어 있지 않은 것도 문제겠지만, 굳이 통일시킬 이유도 생산자에게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결국 6,000원 정도면 구매할 수 있는 Power Module 을 선택할 수 없어 3만 원 이상을 투자해서 전체 Assembly 를 교체하게 되는 일이 자주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위의 사진에서 동일한 전원 규격을 가진 Power Module 이지만 Connector 가 다르고, 심지어 동일 제품임에도 생산일자에 따라 다릅니다. 더 위험한 경우, 같은 Connector 라고 해도 전원이 반대로 제작되어 있는 경우도 있으니 반드시 확인해서 작업을 해야 합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Connector 를 잘 보시면 Connector 의 모양이나 전원선 연결이 다르게 제작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Power Module 의 경우도 비슷한 상황이라 Connector 를 분리해서 옮기는 작업을 해서 사용해야 했습니다. 간단한 작업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지식이 없으면 역시 도전하기 어렵겠습니다. 작업을 하면서 어머니께서 사용하시던 혈압계도 함께 손봤습니다.

 

 

일상에서 발생하는 아주 작은 결함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예로 들었지만, 비슷한 일이 수십억에 달하는 장비에서도 충분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더구나 비용절감으로 인해 중국에서 제작되는 장비들의 경우, 동일 스펙의 장비에 매뉴얼에도 없는 부품이 사용되거나 제작시기에 따라 배선까지 달라지는 장비가 많아지고 있어서 전반적인 장비의 기계적 신뢰도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기계의 발전과 더불어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나 환경의 제약에 더해 장비의 신뢰도 하락이 함께 작용하며 현장에서 일하는 정비사들의 고충이 날로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난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청년들이 늘어가며 기계와 함께 즐거운 직업인이 되는 일이 꽤나 어려운 상황이 되어 많이 아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청년들에게 꾸준하게 공부하라고 주문하는 이유는 같습니다. 직업이 삶이 아니기에 한 가지만 알아서는 직업적 경쟁력은 물론, 한 개인의 삶에 발전을 기대하기가 더 없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다른 관점에서 직업이 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이해하신다면 직업을 선택하거나 이직을 결정할 때 더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직업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나 두뇌의 기능이 제한되고, 만나는 사람과 생각도 굳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나이나 경험이 비례하여 난도가 높아지는 일을 해야 좋다고 생각합니다. 꾸준하게 배워가는 과정이 성장으로 이어지고, 그에 맞는 일의 난도가 올라가면 당연히 만족도가 커지게 되겠습니다.

 

직업을 학습의 기회라 해석하는 이유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많은 경험과 지식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기계가 복잡해지고 변수가 많아지는 것은 인간의 삶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다. 새 제품일 때와는 달리 노후과정에서 다양한 결함이 만들어지며 작동에 변수가 많아지는 것이 인생과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 꾸준히 공부하고 배워야 합니다.

 

정비작업이 쉬워지면서 자연스럽게 공부하는 정비사가 적어지고, 이는 고숙련도 전문가의 부재로 이어져 고가의 첨단장비를 유지하는 비용이 상승할 수밖에 없습니다. 산업 측면에서도 손실이지만 개인에게도 손실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래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장기적으로 기계에 의존하거나 이용당하지 않기 위함이고, 더 나아가 잘 이용해서 더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함입니다.

 

앞으로 기계 전문가는 중공업 제품이던 시절처럼 하드웨어만 알아서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전자제품화 되어간다고 말씀드렸듯, 소프트웨어와 통신, 전기전자 모두 알아야 합니다. 기계에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 진정한 전문가가 되어 기계에서 배운 지식을 자신의 몸이나 삶에 투영하며 기계를 이용하는 사람과, 한 두가지만 배워서 기계를 이용해 돈만 버는 기계에 의존하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지금 기계를 공부하는 청년들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

 

 

패신저스-정비사를 위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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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son Park

 

공군 부사관, 국내외 항공사와 개발업체, 대학 등에서의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항공 및 기계분야 종사자들의 공동체를 이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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