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 어머니께서는 지난 가을, 운동 삼아 매일 오르내리던 산에서 주어오신 도토리를 손질하고 계십니다. 매년 해오던 소일거리라고는 하시지만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만두시라고 말씀도 드리고 싶었으나, 그 귀한 음식을 어떤 마음으로 만드시는지를 또 헤아려 보며 이도저도 못하는 제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동물들 먹이라고 줍지도 못하게 하는 정책이 규제한다고 한들, 어려운 시절을 살아오신 어머니의 자식사랑 습관은 매년 늙은 어머니를 범법자로 만들고 있네요.
예전 어머니들은 그러셨습니다. 없던 시절이었고, 유난히도 가난했던 저의 어린 시절에는 먹성 좋은 3형제의 식욕을 유일하게 구하기 쉬웠던 밀가루를 이용하여 각종 요리에서 간식까지 모두 수많은 수작업을 거쳐 채워주셨고,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자랐던 제 머릿속에는 늘 감사한 음식이라는 생각과 함께 제대로 만든 음식은 정말 많은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음식이 귀하던 시절이라 남기지 못하게 하셨던 보육방침이 지금의 제게도 음식을 버리지 못하는 습관을 남아있지요.
매일 산에 오르시며 한 줌씩 주워, 볕에 말리는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한 후 껍질을 손으로 제거하면 도토리 알맹이가 나옵니다. 썩은 것과 못 먹을 것들을 분리하고 다시 물에 불려 방앗간에서 찧어와 가루에서 녹말을 추출하는 과정을 거치면 비로소 도토리묵을 만들 수 있는 가루가 완성됩니다. 이 가루를 보관하셨다가 적당량을 물에 풀어 약한 불로 오랫동안 저어가며 끓여 식히면 바로 우리가 맛있게 먹는 도토리묵이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시장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도토리묵과는 차원이 다른 이 음식을 요즘 사람들이 맛이라도 제대로 알고 있을까요?
갑자기 음식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무엇이건 편하고 쉽게 하고자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누구에게나 같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될 것이 있고 안 될 것이 분명 존재할 텐데, 우리는 거의 모든 행동이나 생각까지 쉽고 편하게 하려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제 어머니께서 오랜 시간과 품을 들여 번거로운 음식을 만드시는 이유와 그 음식에 더없이 감사하고 먹을 수 있는 마음이 같지 않다면 어머니의 노고는 아무런 의미 없는 시간낭비에 불과하겠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머니께서 그렇게까지 힘들게 음식을 하시고 자식들에게 먹이려 하시는 이유입니다. 제대로 만든 음식이라야 몸에도 좋고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어머니의 생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여 진리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제대로 만들어진 음식을 먹은 사람이 건강한 몸을 갖게 될 수 있을 것이고, 같은 이치로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 좋은 인재가 되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제대로 성장한 인재를 기업도 원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인재는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요즘은 잘 먹지도 않는 도토리묵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사다가 먹을 수 있고,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음식이기에 또 쉽게 버리기도 합니다. 쉽게 암기한 공부가 또 쉽게 잊기도 한다는 경험은 또 역시 쉽게 해볼 수 있는데도 여전히 공부를 쉽게 하려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치고 제대로 된 것이 있을까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소유하기 쉽지 않은 명품이라 부르는 물건들은 오랜 시간과 장인의 많은 노력이 투영되어 있어야 제대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이와 같다고 생각됩니다. 쉽게 만든 음식에 제대로 된 재료를 사용했을리 없고, 그런 음식에 맛을 내기 위해서 각종 첨가물이 들어가는 것이 또 당연한 수순입니다. 이런 음식을 먹으며 몸에 이롭기를 바라는 사람이 과연 정상인가요? 과도한 비약이라고, 또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핑계를 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자신의 미래 또는 자신의 몸에 대한 우롱입니다.
뛰어난 인재가 되기 위한 공부도 쉬운 것이 아니라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배울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돈을 들여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 대부분이고 작은 용기만 필요할 뿐입니다. 대부분은 학교나 학원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이며,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채득해야하는 것들입니다. 제대로 공부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설령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과정이 어렵고 많은 사람들이 하지 않는 방식이기 때문에 위험성이 높다고 생각하여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희망적인 일은 최근에 저를 찾아오는 학생들 중에서 이렇게 공부하는 학생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만나서 대화를 해보고는 감탄을 이어가게 되었고, 그 부모님은 어떤 분이실까 궁금하여 많은 질문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역시나 핵심은 가정교육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이 학부모님이시라면, 자녀의 미래를 위해 용단을 내리셨으면 좋겠고, 학생이라면 학교나 학원에 너무 의지하지 마시고 밖으로 나와서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길은 자신이 찾아야하고 그 과정이 어렵기 때문에 조금은 힘들더라도 어려운 경험들을 많이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물건을 구매할 때 저는 돈의 유무를 떠나 좋은 제품을 선택해서 오랫동안 사용하려 노력합니다. 결과적으로 제품에 대한 만족도도 높고 경제적으로도 득이 되는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갈수록 명품보다는 가짜가 많아지고, 사람도 진짜보다 요령을 쫓는 쉬운 방법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修身(수신)을 강조하면서 음식도 제대로 먹어야하지만 공부도 제대로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음식도 편식이 나쁘듯, 공부도 편식이 위험하며, 제대로 된 공부방법이 어려우니 쉬운 방법만 찾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이 학원으로 몰리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고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영어입니다. 대부분의 학원은 점수를 얻기 위한 요령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우리가 한글을 학원에서 배우지 않았듯, 꾸준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 영어는 오히려 더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학원으로 몰리고 있지요. 그렇게 쉽게 얻는 점수는 실력이 되지 못합니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암기식 교육의 폐해가 현재 청년실업의 주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모든 것을 쉽게 얻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사람이라면 인생도 쉽게 살고자 하겠지요. 사람도 쉽게 보고 함부로 대할 것이며, 자신보다 어리거나 가난해 보이는 사람은 모조건 무시하는 습성을 갖게 됩니다. 이성간의 만남도 쉽게 생각하니 헤어짐도 쉽게 결정하고, 결국 사람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며 평생을 살아가게 될지 모릅니다. 며칠 전 모 프로그램에 나왔던 어느 나이 든 여배우의 말이 참 서글펐습니다. 한 번의 이혼경험이 있는 그 배우는 이제는 남자가 없어도 불편하지 않다며 더 이상 결혼을 위한 연애는 하고 싶지 않다고 하더군요. 결혼은 편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혼자보다 둘이 사는 것이 더 불편합니다.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는 것은 혼자보다 둘이 더 행복하고 둘보다 셋이 더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둘이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 행복을 지키기 위해 해야 할 것들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혼자만의 행복만 알고 생을 마칠 수 있겠지요.
행복하기 위한 방법도 많은 수고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이 사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사람을 배우는데 참으로 인색하더군요. 이 역시 너무 쉽게 생각하고 만나며 헤어짐을 반복합니다. 한 번 이혼의 경험이 있다면 어떤 이유에서 이혼을 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찾아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배울 것을 찾고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시간낭비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실수를 통해 배우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전하는 모습을 즐겨야합니다.
맛있는 도토리묵 뒤에 많은 수고가 필요한 것처럼 모든 행동의 결과가 만족스럽기 위해서는 그만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를 다시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이제 사회인이 되려는 많은 젊은이들의 경우 지금껏 학교에서 배워왔던 것처럼 모든 것을 암기하여 점수로 증명하려하기 보다는 오랜 시간을 발효시켜야 비로써 맛있는 된장이나 김치가 만들어지듯, 차근차근 제대로 된 방법으로 공부하시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쉬운 방법으로 살아가며 흔하고 포장만 화려한 편의점 앞 1+1 초콜릿이 되기보다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은은한 빛을 내는 명품이 되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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