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월요일 아침 출근길, 몇 가지 어긋난 약속과 만원 지하철을 타지 못한 약간의 짜증이 고온다습한 공기와 맞닿아 누구라도 건드리면 한판 붙어보겠다는 평소의 나 같지 않은 각오를 하게 했다. 조금 더 걷더라도 버스로 움직이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버스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겨가는 길이었다. 지하철 출구에서 정류장까지는 100m 남짓. 가방 속 우산을 꺼내야 할지 고민할 정도의 거리와 비의 양을 두고 가늠하려는 즈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누군가의 발걸음을 보게 된다.
주황색 등산복 차림에 불편한 발걸음은 매 초가 지나야 겨우 한 걸음을 내딛는 수준이었고 팔이나 손에도 불편한 기색이 보여 우산을 들지 않고 있는 이유를 알아차리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00m를 100km처럼 걷는 여인의 모습은 비가 내리거나 사람들이 많거나 걸음이 불편하거나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무심한 표정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 입구까지 빨리 가는 경주라도 하듯,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들이었다. 그 중 상당수는 지하철 입구 앞 횡단보도의 적색등을 보고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좌우를 살핀 후 이내 건너기 시작한다. 눈치를 보던 주변사람들도 순간의 고민과 함께 범칙(犯則)의 발걸음에 동참한다.
신호를 기다리는 내내 그 두 발걸음을 지켜보고 있던 이유를 모르겠다. 범칙의 발걸음이 나쁘게 보인 것도 아니다.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그러고 있으니 이제는 준법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가끔은 적색등을 바라보며 혼자 서있는 내 모습이 바보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게 맞는 일이라고 애써 내 자신을 위로하기도 한다. 그저 그런 이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불편한 발걸음들일 뿐이다. 버스 정류장의 기다리던 번호를 바라보던 시선이 중복된 것인지, 바쁘게 지나치는 사람들 사이에 혼자 멈춰있는 듯 보이는 그 걸음이 나의 시선을 빼앗은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그 두 번째 발걸음은 내 몸이 불편한 발걸음이다. 어서 달려가 우산을 씌워드리는 것이 맞는데, 발이 말을 듣지 않는다.
신호가 바뀌고 정적인 발걸음과 가까워지는 시간, 피곤인지 고통인지 아니면 땀인지 비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발걸음의 주인은 메마른 중년의 여인이었다. 무슨 사연일지,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절박한 무엇이 이런 고난의 길을 감수하게 했을까 잠시 생각이 스치던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순서대로 중년의 여인을 좌, 우로 피해가며 좁은 길을 달려오고 있었고, 나는 마치 역주행 차선에라도 들어온 양 다소의 부담을 가지며 혼자 걷고 있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충돌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순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상냥한 여인의 목소리가 있었다.
“어디까지 가세요?”
젊은 여인의 목소리였고, 그녀의 우산은 이미 느릿한 발걸음의 주인공 머리 위를 향하고 있었다. 순간, 나의 발걸음은 멈추었고, 그 천사와 같은 여인의 얼굴을 짧지만 강하게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어찌 그리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잠시 느끼고 있던 짜증이 환희의 순간으로 바뀌며, 불쾌했던 월요일 아침이 상쾌한 빗소리로 들리게 될 줄이야. 멈춰버린 발걸음이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주춤거리는 사이, 두 여인은 천천히 내 옆을 지나고 있었다. 부축하는 손길에 의지해 조금씩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이처럼 천천히 걷는 두 여인을 보는 내 마음은 멈춰선 내 걸음을 거스르듯 180도 돌아가는 내 고개로 증명되고 있었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버스 정류장에서도 지하철 입구까지 들어가는 두 여인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 동안 잊고 있던 마음가짐을 다시 정리해보게 되었다. 아름다운 것들만 보며 살아도 다 볼 수 없는 짧은 인생인데 언제부터 궂은 일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을까. 내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는지, 아니면 세상에 좋은 일들이 적어진 것인지.
두 여인의 뒷모습을 보며 반성을 해본다. 아름다운 눈으로 아름다운 사람들을,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자. 그만큼 나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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