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하던 차량에 문제가 생겨 정비를 해야하는 상황이라면 어떤 정비사를 찾으시겠습니까? 보통은 차에 관련된 지식이 없다보니 정비사의 역량보다는 해당 차량의 제조사에서 운영하는 대형정비소를 찾는 경우가 많고, 대기업이니 그 직원들의 실력을 믿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판단을 하게 됩니다. 과거, 자동차가 "중공업 제품"이었던 시절에는 상대적으로 대우가 좋았던 대기업에 실력이 좋은 정비사들이 많았고, 이런 정비사들이 독립해서 개인 정비소를 운영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자동차를 모르는 소비자들은 대기업을 선호했지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고 정비의 재미와 함께 저렴한 정비를 원했던 소비자들은 개인이 운영하는 정비소를 많이 찾았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발전하며 자동차가 더이상 중공업 제품의 범주에 넣기 어려운 상황으로 변화하며 정비사의 수준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항공기 정비사도 다를 것이 없었는데, 그보다 난도가 낮고 이익에 집중하는 체계에 속하는 자동차 정비업에서는 한 개인 정비사의 실력에 의지하는 정비행위는 기업의 입장에서 경쟁력이라기 보다는 위험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분위기도 함께 발전하게 됩니다.
결함이 나타났을 때, 원인을 파악하고 최소한의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서 원인을 해결하는 것은 정비의 핵심입니다. 아울러, 사용하는 입장에서도 결함이 발생하기 전에 그 물건에 대한 지식을 정확하게 인지하여 결함이 생기지 않도록 유지하며 사용하는 것 역시 정비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사용자들이 자신이 사용하는 제품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이해하고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공부하는 일은 당연한 순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더구나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담보할 수 있는 제품이라면 의무라고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는 단순히 기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분야에 적용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체에 발생하는 질병도 같은 방식으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몸의 구조와 생리적 현상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일이 우선이고, 이를 바탕으로 무리하게 몸을 사용하지 말고 잘 관리해야 늙어서도 큰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원리와 같습니다. 감기가 걸렸을 때, 감기가 걸리는 원인을 이해하고 쉬면서 몸의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 먼저이고, 재발을 방지하는 노력을 유지하는 것이 현명하겠습니다. 하지만 약이나 수술을 통해 병으로 인한 결과물만 제거하는데 집중한다면, 같은 병을 지속적으로 겪게되는 현상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정비사라는 직업을 떠나 세상의 사물을 이해하는 습관을 많이 강조하며 청년들을 지도하고 있지만, 장기간 학교에서 학습되고 세뇌된 학습패턴으로 인해 "이해"보다는 "암기"에 집중하는 청년들이 여전히 많아 보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경험했던 자동차 관련 이야기를 통해 이해하며 알아가는 지식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말씀드리려 합니다.
저는 1995년도에 생산된 차량을 운행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비용대비 가장 큰 만족도를 주는 차량이라는 측면이 큰 이유가 되겠습니다. 만족도라는 것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좋은 성능과 기계적 제어능력, 기본에 충실한 기계를 좋아하기 때문에 요즘 만들어지는 차량보다는 예전의 순수 아날로그 시스템을 가진 차를 선호합니다. 직관적인 시스템이 주는 기계적인 피드백도 좋고, 인간의 능력에 따라 반응하는 기계의 능력 변화가 주는 감흥에 큰 만족을 느끼고 있습니다.
늙은 벤츠지만 잘 관리하면 앞으로도 10년 이상 더 운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꾸준히 애정을 쏟으며 타고 있습니다. 이 차량을 유지하기 위한 정비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정비소를 찾는 일은 꽤나 어려웠습니다. 지금은 수입차를 정비할 수 있는 곳이 많지만, 예전에는 공식 서비스 센터 외에 몇 곳이 되지 않았고, 그런 정비소들을 일일히 다니면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습니다.
몸이 아파서 병원을 찾더라도 병원의 크기보다는 의사를 보고 판단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큰 병원에 실력이 있는 의사기 있을 확률이 높기는 하지만, 실력이 있는 의사보다는 나와 맞는 좋은 의사를 찾고 싶은 마음이 저는 강합니다. 환자 한 명을 돈으로 판단하고 의사를 돈벌이 수단으로 취급하는 병원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를 정비하는 상황에서도 자동차만 잘 고치는 정비사보다는 정비라는 행위를 즐기며 그 이상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정비사를 찾아다녔고, 그렇게 찾은 정비소와 10년간 잘 유지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정비사와 정비소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되는 상황이 찾아오고 최근에는 오래 거래하던 정비소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이유와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의 영상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영상에서도 언급하지만, 믿을 수 있는 정비사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할까요? 업무적 능력도 물론 출중해야겠지만, 인간관계에서 주고 받는 신뢰를 쌓지 않으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살아남기는 어렵겠습니다. 물론, 정비사의 실력을 판단할 수 있는 소비자의 수가 지금보다 더 줄어간다면 신뢰할 수 있는 정비사의 수도 함께 줄어갈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거래해왔던 정비소가 비슷한 이유에서 변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정비소 하나 찾는데 너무 까다롭다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듯 합니다. 물론, 이렇게 세심하게 신경쓰지 않고 대충 정비하고 다녀도 차는 유지가 되겠지만, 이런 정비과정에서 느끼고 배운 지식들이 자산이 되고 더 큰 결과를 만들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정비라는 행위를 하기 위해서 기계를 공부하고, 유지하며 배우는 것들이 차와 같은 기계에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비행기를 정비하며 배운 지식들이 사물뿐만 아니라 인체를 바라보는 시선도 바꾸게 되었고, 저와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질병을 해석하고 대응하는 능력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모두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결혼 초기, 불임이라는 판정에서 아들을 얻게 되는 과정은 물론이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타나는 저와 아내의 질병을 해석하고 대응책을 찾아내는 제 모습을 바라보며 정비사라는 직업을 가졌던 경험에 감사하는 일이 많아지게 됩니다. 사람의 몸도 기계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잘 이해하고 관리하면 건강을 유지할 수 있고, 병이 오더라도 적절하게 대응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항공기 정비사라는 직업을 경험했던 덕분에 기계에 대한 지식과 경험들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서 주변의 사물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소한 수리에서 즐거움을 얻고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도 있지만, 안전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을 도우며 인간관계의 확장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미 블로그에도 많은 글들을 통해서 제가 경험했던 내용을 공유하고 있고, 정비사라는 직업을 희망하는 청년들에게도 직업적 즐거움을 많이 나누고 있습니다.
다시 자동차 이야기로 돌아와야겠습니다. 정비사가 되려는 꿈을 꾸는 청년들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라고 하더라도 자신과 가족의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자동차와 같은 기계는 충분히 공부하고 이해하고 있는 것이 좋겠다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정비사가 되는 수준까지 공부할 이유는 없겠지만, 영수증에 표시되는 내용이라도 정확하게 이해해야 비로서 믿을 수 있는 정비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더구나, 정비사가 되겠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이라면 조금 더 즐겁게 공부하고 기계를 즐기기 위해서 공부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요즘 청년들에게 강조하는 논어의 말씀이 있습니다.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보다 못하며,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보다 못하다"는 의미로 많이 알려진 이야기로 "즐기는 자"에 집중해서 통용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즐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저도 많이 강조하지만, 그렇게 즐기기 위해서는 역시 가장 먼저 잘 "아는 자"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알지 못하고 암기해서는 즐길 수 없기 때문에 기초부터 잘 알아가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시고 이해하며 배우시기 바랍니다.
병원보다 의사를 찾아야 하듯, 학교보다 선생을 찾아야 합니다. 좋은 선생은 세상에 참 많은데, 모두 숨어있는 것 같습니다. 잘 찾으셔야 합니다. 정비소(기관)보다 정비사(사람)를 찾을 수 있는 능력은 제대로 배워야만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꾸준하게 배우는 삶을 살아가신다면 사물은 물론, 사람도 꿰뚫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Jason Park
공군 부사관, 국내외 항공사와 개발업체, 대학 등 에서의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항공 및 기계분야 종사자들의 공동체를 이끌고 있습니다.
'정비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로나 이후 정비산업의 변화 (0) | 2020.07.17 |
---|---|
항공정비 전공하지 마세요. (0) | 2020.06.17 |
정비사의 이직준비 (0) | 2020.04.10 |
위기에 빛나는 정비사 (0) | 2020.04.03 |
이상적인 항공정비유학 (0) | 2020.02.28 |